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단 편집)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자치권의 박탈 === 1700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마지막 국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승하하자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둘째 손자 필리프 공작([[펠리페 5세]])을,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의 [[레오폴트 1세]]는 차남 카를 대공([[카를 6세]])을 합당한 스페인 왕위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카를로스 2세의 유언은 필리프 공작을 차기 계승자로 지명했기 때문에 루이 14세는 재빨리 필리프를 스페인으로 보내 [[펠리페 5세]]로 즉위시켰으나 [[잉글랜드 왕국|잉글랜드]], [[네덜란드 공화국|네덜란드]],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등이 이에 반발하여 카를 대공을 옹립하면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다. 카탈루냐-발렌시아 지역은 1640년 카탈루냐 반란 때의 경험으로 프랑스 부르봉 왕조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카를 대공을 지지하며 전쟁에 뛰어들었다. 카탈루냐-발렌시아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로부터 그때까지 어느 정도 자치권을 보장받아왔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왕조에서 왕위를 이어받는다면 계속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반면 절대왕정을 추구하는 부르봉 왕조가 왕위를 이어받는다면 프랑스 남부 지방처럼 자치권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탈루냐어를 금지당하고 중앙정부가 강요하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써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과거 사례를 보면 프랑스 중남부 지역은 물론이고 1640년 반란 때 카탈루냐에서 프랑스로 넘어간 지역인 피레네조리앙탈(Pyrénées-Orientales)도 프랑스어의 사용을 강요받아 더 이상 카탈루냐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한창 전쟁이 진행 중이던 1711년 카를 대공이 형 [[요제프 1세]]의 급사로 [[합스부르크 제국]]을 상속 받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6세로 선출되면서 전황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카를 6세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열강들이 태도를 바꾸어 부르봉 왕조의 펠리페 5세를 스페인 국왕으로 차례로 승인하면서 전쟁이 수습단계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카탈루냐는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받으며 끝까지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스페인 연합군과 맞섰다. 하지만 역시 힘의 차이가 커서 1714년 9월 11일 마침내 [[바르셀로나]]가 함락당하면서 완전히 진압되었다. 예상되었던 것처럼 펠리페 5세는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실시했다. 1716년에 새로운 국가기본법(Decretos de Nueva Planta)이 입법되어 카탈루냐는 최소한의 자치권마저 완전히 박탈당하고 다른 주와 완전히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한편 전쟁 당시 바르셀로나 시장으로서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지휘관으로 활동한 라파엘 카자노바(Rafael Casanova i Comes)는 바로셀로나에 동상까지 세워졌으나 오늘날에도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인물이다. 일단 다수의 카탈루냐인들은 그를 최고의 애국자 중 한 사람으로 추앙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카자노바는 친오스트리아 성향으로 단지 외세와 결탁한 인물일 뿐 카탈루냐의 애국자는 아니라고 비판하는 카탈루냐인들도 있다. 현재 카탈루냐의 독립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패한 1714년이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합병된 때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카탈루냐의 독립을 다루는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널리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자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직전까지도 스페인 왕국의 일부였던 카탈루냐가 왕위 계승 전쟁 시점에서 잠깐 외부 세력과 결탁했다고 이전까지 독립국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르셀로나 백작이 변경백으로 웅거한 시점에서 카탈루냐 세력이 큰 세력권을 형성한 [[아라곤 왕국]]까지가 카탈루냐가 독립국으로 존재했던 시기이며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의 연합 왕국 시기 정도가 어느 정도 자치권을 보유한 연합국의 일원이라 할 수 있는 시점의 한계다. [[카를 5세|카를로스 1세]]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들어선 후 [[펠리페 2세]]가 중앙집권화를 이룬 시점에서 카탈루냐의 독립적 지위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간주된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카를 대공이 손을 뗀 후에는 카탈루냐 지도부도 카탈루냐만으로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에 맞서 승리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실현 가능성도 없었다. 카를 대공이 스페인 국왕이 되었어도 카탈루냐는 봉건 영주들이 스페인이라는 국가 안에서 여전히 자치권을 가지는 형태나 카를 대공이 펠리페 5세와 스페인을 분할하여 옛 아라곤 왕국을 부활하는 형식으로 카탈루냐의 왕이 되거나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결국 카를 대공이 이겨봤자 카탈루냐는 오스트리아령 카탈루냐로 전락했을 것이다. 수확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겼다면 프랑스령 카탈루냐가 되었을 것처럼 말이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의 연합 왕국 이후 카탈루냐의 저항세력들이 독립국으로 존재하겠다고 하지 않고 자치권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전부터 존재한 독립국가의 면모가 아니라 특정한 국가 내부에 있는 [[자유도시]]나 봉건 영주가 자기 권리를 요구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유럽 역사에서 이런 형태로 독립국 취급을 받은 나라는 없다. 이런 자치권이 있는 봉건 제후들이 자치권을 잃고 중앙집권 국가의 일부 지방으로 변하는 것이 유럽 중앙집권 국가의 탄생 과정으로, 프랑스가 대표적이고 스페인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늦어져서 현대 막바지에서야 이뤄진 국가가 독일과 이탈리아이며 재편 과정에서 자력으로 독립해서 살아남은 대표적인 지역이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있는 [[저지대 국가]], 그리고 [[스위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